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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줄기세포와 재생, 몸은 어떻게 스스로를 고쳐 쓰는가

by songshine 2025. 11. 19.

우리 몸은 겉보기와 달리 '소모품'에 가깝다. 장 상피세포는 며칠을 못 버티고 떨어져 나가고, 피부의 각질층은 끊임없이 벗겨지며, 혈액세포도 짧은 수명을 가진다. 그럼에도 전체 구조가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는 이유는, 손실된 세포를 채워 넣는 보이지 않는 공급원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공급원의 정체가 바로 줄기세포이고, 줄기세포가 작동하는 방식이 곧 '재생'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줄기세포가 다른 세포와 구별되는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스스로를 다시 만들어 내는 자가복제 능력이 있다. 둘째, 여러 종류의 세포로 갈라질 수 있는 분화 능력을 가진다. 이 두 능력의 조합이 줄기세포의 '등급'을 나눈다. 배아 초기의 배아줄기세포는 신경, 근육, 혈액, 간세포 등 거의 모든 계통으로 분화할 수 있는 전능 또는 다능 상태에 있다. 반면 성체 조직에 존재하는 성체줄기세포는 특정 계통으로만 분화할 수 있도록 선택지가 좁혀져 있다. 예를 들어 골수의 조혈줄기세포는 다양한 혈액세포로는 분화하지만, 신경세포나 근육세포가 되지는 않는다.

성체줄기세포는 각 조직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 이른바 니치(niche)에 자리 잡고 있다. 니치는 줄기세포에게 필요한 신호와 물질을 공급하는 미세환경으로, 세포외기질, 지지세포, 혈관, 신경 섬유가 섬세한 균형을 이룬 구조다. 줄기세포는 이 니치 안에서 대부분 조용히 휴식 상태로 있다가, 주변 세포가 손상되거나 숫자가 줄었다는 신호가 들어오면 분열을 시작한다. 한 번 분열할 때 줄기세포 자신을 그대로 보존하는 딸세포 하나와, 분화 방향을 타기 시작한 전구세포 하나를 동시에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원금'을 지키면서 '이자'만 꺼내 쓰는 셈이다.
재생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대표적인 예가 장 상피, 피부, 혈액이다. 소장의 융털 사이에는 움푹 파인 크립트 구조가 있고, 그 바닥에 장줄기세포가 모여 있다. 이 세포들이 분열해 나온 전구세포들은 위로 이동하면서 흡수세포, 컵세포, 엔테로엔도크린 세포 등으로 분화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융털 끝에서 떨어져 나간다. 전체 상피가 며칠 단위로 갈아끼워지지만, 우리는 이를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피부에서도 모낭 주변과 기저층에 위치한 줄기세포들이 상처가 생기거나 각질층이 벗겨졌을 때 새로운 각질세포를 공급한다. 골수 속 조혈줄기세포는 끊임없이 분열하며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을 만들어 혈액계를 유지한다.
흥미로운 점은 조직마다 '재생 전략'이 다르다는 것이다. 간은 비교적 재생 능력이 뛰어난 장기다. 간세포 자체가 분열 능력을 유지하고 있어, 일시적인 손상이 생기면 기존 세포가 증식해 조직을 메운다. 반면 심장 근육이나 신경계는 재생 능력이 제한적이다. 심근세포와 대부분의 뉴런은 출생 이후 분열 능력을 거의 잃어버리기 때문에,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손상이 생기면 기능을 완전히 회복하기 어렵다. 대신 섬유아세포가 증식해 상처 부위를 메우면서 흉터 조직이 형성된다. 구조는 복구되지만 원래와 같은 기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재생의 정도는 결국 줄기세포 혹은 분열할 수 있는 세포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그리고 손상 후 어떤 신호 환경이 조성되는지에 달려 있다.
줄기세포는 재생의 주역이지만, 동시에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자가복제와 분화라는 능력은 적절히 통제될 때 조직 항상성을 유지하지만, 제어 체계가 고장 나면 암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줄기세포 혹은 전구세포에서 세포주기 조절 유전자나 DNA 복구 시스템에 이상이 생기면, 무제한 증식하는 종양 줄기세포가 등장한다. 실제로 많은 암에서 종양 내부에 '암 줄기세포'라고 불리는 세포 집단이 발견되며, 이 세포들이 재발과 전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재생과 암은 같은 분자 기계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용하는 셈이라, 줄기세포 연구는 필연적으로 암 연구와 맞닿는다.
현대 생명과학은 줄기세포의 재생 능력을 넘어서 치료 도구로 확장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성과가 유도만능줄기세포(iPS 세포) 기술이다. 성인의 피부세포나 섬유아세포에 특정 전사인자들을 인위적으로 발현시키면, 이미 분화가 끝난 세포가 다시 배아줄기세포와 비슷한 다능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렇게 얻은 iPS 세포는 이론적으로 환자 자신의 유전자를 그대로 지닌 채 다양한 세포형으로 분화시킬 수 있어, 면역 거부 반응을 줄인 맞춤형 세포치료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다만 분화 방향을 정밀하게 제어하고, 종양 형성 위험을 낮추는 것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또 다른 방향은 조직공학과 오가노이드(organoid) 연구다. 줄기세포를 3차원 배양 조건에서 자라게 하면, 장, 간, 뇌, 망막 등 특정 장기의 구조와 기능을 부분적으로 모사하는 작은 조직 덩어리가 형성될 수 있다. 이 오가노이드는 질병 모델링, 약물 독성 시험, 발달 연구에 활용된다. 장기 이식이 필요한 상황에서 실제 크기의 기능적 장기를 완전히 재현하기에는 아직 거리가 있지만, 줄기세포가 지닌 재생 프로그램을 어떻게 조직 수준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재생을 이해하는 일은 단순히 '상처가 빨리 낫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 이상이다. 줄기세포와 니치, 성장 인자와 억제 신호, 염색질 구조와 후성유전 조절이 어우러져 조직의 시간표와 교체 주기를 어떻게 설계하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어떤 조직은 빠른 교체와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암 발생 가능성을 높게 가져가고, 어떤 조직은 재생성을 낮추는 대신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이 선택의 결과가 각 장기의 질병 감수성과 노화 양상으로 이어진다.
결국 줄기세포와 재생은 몸이 스스로를 고쳐 쓰는 전략의 핵심이다. 세포 수준에서는 끊임없이 죽고 태어나는 흐름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 변화를 거의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 착시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줄기세포 풀과 정교하게 조율된 재생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원리를 더 깊이 이해한다면, 손상된 장기를 다시 살리고, 노화한 조직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치료법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