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물학이 다루는 수많은 주제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 중 하나는 한 개의 세포가 수십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온전한 몸으로 자라나는 발달 과정이다. 수정 직후의 접합자는 겉으로 보면 작은 구형 세포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장기와 조직, 행동과 인지까지 형성할 설계도와 실행 계획이 압축된 형태로 들어 있다. 발달생물학은 이 압축된 설계도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하나의 개체가 되는지를 추적하는 학문이다.
이 이야기는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난자는 초기 발달에 필요한 단백질, mRNA, 막 구조, 에너지 자원을 듬뿍 싣고 있는 거대한 세포이고, 정자는 아버지의 유전체와 발달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두 세포가 융합하면 세포 안에서 칼슘 농도가 증가하고, 막전위와 단백질 인산화 상태가 급격히 바뀌며 난자로서의 상태를 끝내고 접합자 프로그램을 켜라는 신호가 생성된다. 이때부터 '발달'이 단계별로 실행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일어나는 변화는 빠른 세포분열이다. 접합자는 세포 크기를 키우지 않은 채 핵과 세포질만 반복해서 나누어, 여러 개의 작은 세포로 이루어진 배가 된다. 전체 크기는 거의 그대로인데 세포 수만 늘어나는 독특한 방식이다. 이 초기 세포들은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난자 안에 미리 깔려 있던 물질 분포 덕분에 이미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특정 단백질과 mRNA가 난자의 한쪽에 더 몰려 있었다면, 그 영역을 물려받은 세포는 다른 세포와 다른 유전자 발현 프로그램을 켜게 된다. 난자 내부의 이 비대칭이 발달 패턴을 정해 주는 첫 좌표가 된다.
분열이 진행되면 세포들은 더 견고하게 서로 붙으면서 바깥과 안쪽이 구분된 구조를 만든다. 포유류에서 볼 수 있는 배반포가 이 단계다. 바깥층 세포들은 태반과 지지 조직을 형성하고, 안쪽에 뭉친 세포 덩어리는 실제 개체가 될 몸의 씨앗이 된다. 세포들은 접착 단백질과 외부 기질, 서로를 밀고 당기는 물리적 힘을 이용해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발달은 유전자뿐 아니라 힘과 구조가 함께 작동하는 과정이다.
이후 나타나는 큰 전환점은 배엽층의 형성이다. 많은 동물에서 배아는 외배엽, 중배엽, 내배엽이라는 세 층으로 나뉜다. 외배엽은 피부와 신경계를, 중배엽은 근육, 뼈, 심장과 혈관을, 내배엽은 소화기와 호흡기, 간, 췌장 같은 장기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세포들은 안쪽으로 파고들거나 옆으로 이동하며 층을 재배치한다. FGF, BMP, Wnt 같은 신호 분자들이 어느 세포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어떤 유전자를 켤지 조율한다. 결국 같은 유전체를 가진 세포라도 어떤 신호 조합을 언제 받았는지에 따라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된다.
배엽층이 자리 잡으면 세포 운명은 더 세분화된다. 외배엽 일부는 안으로 말려 들어가 신경관을 형성하고, 여기서 뇌와 척수가 만들어진다. 다른 외배엽 세포는 피부와 모낭이 된다. 중배엽에서는 심장 원기가 리듬을 타기 시작하고, 근육, 뼈, 혈액줄기세포의 전구 세포가 등장한다. 내배엽에서는 원시 장관이 접히고 구부러지며 위, 장, 간, 폐의 기초 구조가 형성된다. 이때 Hox 유전자와 같은 '몸의 설계도 유전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 전사인자는 몸의 앞과 뒤, 머리와 몸통, 몸통과 사지의 구역을 나누며, 어느 위치에서 어떤 조합이 켜져 있는지에 따라 같은 세포도 전혀 다른 구조를 만들게 된다.
발달에서는 무엇을 만들지, 얼마나 만들고 언제 멈추느냐가 중요하다. 장기가 자라나는 동안에는 세포분열이 활발해야 하지만, 일정 크기에 도달하면 성장 신호가 차단되고 세포주기가 억제되어야 한다. 반대로 어떤 조직은 계획된 세포사멸을 통해서만 올바른 형태를 얻는다. 사람 손가락 사이를 메우던 막 조직이 세포사멸로 제거되면서 다섯 손가락이 분리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증식과 세포사멸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구조가 과도하게 남거나 기능이 떨어진 장기가 만들어진다.
발달은 완성된 형태만을 향해 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임시 단계와 전환을 거친다. 예를 들어 포유류 태아의 순환계는 성인과 전혀 다른 혈관 배열을 가지고 난황과 태반, 폐를 잇는 특별한 통로를 활용한다. 출생 후 호흡 방식이 바뀌면 이 통로들이 차례로 닫히고 성인형 순환 구조가 완성된다. 발달 프로그램은 이런 임시 회로가 열리고 닫히는 시점까지 정밀하게 조절한다.
유전체는 발달의 기본 설계도를 제공하지만, 결과를 혼자서 결정하지는 않는다. 세포 간 상호작용, 조직 수준의 물리적 힘, 영양과 온도 같은 환경 요인이 모두 결합해 최종 결과를 만든다. 같은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도 배아 시절에 어떤 미세 환경에 놓였는지, 어느 시점에 조금 더 강한 신호를 받았는지에 따라 구조와 기능이 약간씩 달라질 수 있다. DNA 메틸화, 히스톤 변형 같은 후성유전 표지가 발달 단계마다 덧씌워지고 지워지면서 세포 정체성을 안정화하거나 재조정한다. 발달은 결국 유전자와 세포, 물리적 힘과 환경이 얽힌 복잡한 네트워크이다.
이 네트워크에서 줄기세포는 핵심 허브다. 배아 줄기세포는 거의 모든 세포 유형으로 분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면서도 자기복제를 통해 그 상태를 유지한다. 성장 후에도 각 조직에는 성체 줄기세포가 남아 손상된 부위를 보수하고 오래된 세포를 교체한다. 이 조절 회로가 제대로 작동하면 조직은 평생에 걸쳐 스스로를 유지하지만, 회로가 망가지면 줄기세포가 무한 증식하는 암세포로 변할 수 있다. 그래서 발달의 원리를 이해하는 일은 암의 발생, 재생의학, 인공 장기 배양 기술을 이해하는 일과 곧바로 연결된다.
결국 한 개의 세포가 완전한 개체가 되는 과정은, 정보가 형태와 기능으로 번역되는 장대한 변환이라고 할 수 있다. 수정란 속에 압축되어 있던 유전 정보와 공간 좌표, 세포 간 상호작용 규칙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차례대로 펼쳐지면서 우리가 하나의 '몸'이라고 부르는 구조가 등장한다. 이 프로그램이 충분히 안정적이기 때문에 같은 종의 개체들은 서로 닮은 모습으로 태어나고, 동시에 작은 유전적 변이와 환경 차이가 개체 간 다양성을 만들어 낸다. 한 개의 세포에서 시작된 이 발달의 언어를 해독하는 일이 곧 발달생물학이며, 생명이 어떻게 자기 모습을 조직하고 유지하는지 이해하게 해 주는 가장 중요한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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