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증은 몸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리는 경보이자, 손상된 조직을 복구하려는 적극적인 반응이다. 세균이 침입하거나, 조직이 찢어지고 세포가 죽으면 그 조각들에서 위험 신호가 흘러나온다. 이 신호를 포착한 면역세포와 혈관 내피세포는 혈관을 확장시키고, 백혈구를 현장으로 불러 모으며, 손상 부위를 고립시키는 일련의 변화를 일으킨다. 우리가 익숙하게 느끼는 붉어짐, 부기, 열감, 통증은 모두 이 과정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표지이기도 하다.
급성 염증의 핵심 목표는 단순하다. 침입한 미생물이나 독소를 제거하고, 부서진 세포 잔해를 치운 뒤, 조직을 다시 쓸 수 있는 상태로 돌려놓는 것이다. 초기에 도착한 호중구는 공격적인 무기들을 쏟아부어 병원균을 처리하고, 그 뒤를 이은 대식세포가 현장을 정리한다. 손상된 모세혈관 주변에서는 혈장이 스며 나와 응고 단백질과 보체 단백질을 공급하고, 섬유모세포와 상피세포는 증식해 상처를 메운다. 미시적인 수준에서 보면 염증 반응은 세포와 분자들이 치밀하게 협업하는 복구공사에 가깝다.
잘 끝나는 염증에는 명확한 '종료 신호'가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위험 요인이 제거되면, 대식세포는 공격적인 염증 매개체 대신 염증을 가라앉히는 지질 매개체와 성장인자를 분비하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 혈관 투과성이 줄고, 과잉으로 모인 백혈구가 서서히 퇴장하며, 조직 재생과 리모델링이 진행된다. 염증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염증을 수습하고 균형을 회복하는 별도의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셈이다. 이 종료 과정에 작은 균열이 생길 때, 염증은 치유의 도구에서 만성병의 씨앗으로 변한다.

만성 염증은 급성 반응이 끝나지 못하고 낮은 강도로 길게 이어지는 상태를 가리킨다. 지속적인 감염, 흡연과 대기오염, 자가면역 반응, 비만과 고열량 식단, 오래가는 스트레스가 대표적인 원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식세포와 T세포가 조직 속에 상주하며, 적당히 손상을 줄 만큼의 사이토카인과 활성산소를 계속 뿜어낸다. 처음에는 미미한 변화처럼 보이지만, 수년에서 수십 년 동안 누적되면 혈관 내벽에 지방과 염증세포가 쌓여 죽상 경화반이 형성되고, 간과 췌장에는 지방과 섬유화가 진행되며, 관절과 혈관, 심장 근육까지 구조적 손상이 남는다.
비만과 제2형 당뇨를 예로 들면 이 연결고리가 더 선명해진다. 지방조직이 과도하게 늘어나면 그 안에 산소 공급이 충분하지 못한 부위가 생기고, 일부 지방세포는 스트레스를 받다가 죽는다. 이 세포 잔해 주변으로 대식세포가 몰려들어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분비하고, 이는 인슐린 신호전달을 방해해 인슐린 저항성을 키운다. 혈당 조절이 깨지면서 대사 스트레스가 더해지고, 다시 염증이 강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겉으로는 눈에 띄는 붓기나 열이 없는데도, 몸 전체가 약한 염증의 안개 속을 오래 걷는 셈이다.
장내 미생물과의 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 장 점막은 음식 항원과 미생물, 면역세포가 가장 촘촘히 마주치는 장소다. 공생 미생물에서 나오는 대사산물은 장 상피세포와 면역세포를 조절해, 과도한 염증을 막는 완충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섬유질이 거의 없는 식단, 반복된 항생제 사용, 수면과 스트레스 불균형은 장내 미생물 구성을 바꾸고 점막 장벽을 약하게 만든다. 이때 장 내강의 세균 성분이 조금씩 혈류로 흘러 들어가면, 전신에서 저강도 염증 반응이 촉발될 수 있다. 장에서 시작된 작은 균열이 대사질환과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메커니즘으로 제시되는 이유다.
염증이 항상 해롭다면 몸은 애초에 이런 시스템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염증 반응이 지나치게 약한 사람들은 감염에 취약해지고, 상처가 쉽게 곪거나 잘 아물지 않는다. 반대로 염증 반응이 과도하거나 정리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류마티스관절염, 염증성 장 질환, 건선, 천식 같은 자가면역, 알레르기 질환에 시달리기 쉽다. 염증의 본질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적절한 시점에 켜고 끄는 조절 능력에 가깝다. 적당한 불은 집을 따뜻하게 데우지만, 관리하지 못하면 같은 불이 집 전체를 태우는 것과 비슷하다.
의학은 이 불꽃을 조절하기 위해 여러 도구를 개발해 왔다. 스테로이드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는 염증 매개체의 생산을 억제해 통증과 부기를 줄이고, 생물학적 제제는 특정 사이토카인이나 수용체를 표적으로 삼아 과도한 면역 반응을 눌러 준다. 다만 이러한 약물은 어디까지나 결과 쪽을 조정하는 수단일 뿐, 염증을 반복해서 일으키는 생활 습관과 환경 요인이 그대로라면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다. 충분한 수면, 규칙적인 운동, 섬유질과 적절한 지방이 포함된 식단, 흡연과 과음의 회피는 염증을 낮추는 가장 기초적인 개입이자, 약물치료의 토대를 이루는 요소들이다.
염증을 하나의 질환이 아니라, 몸이 위협과 손상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으로 바라보면 그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필요한 순간에는 빠르고 강하게 타올라야 하고, 상황이 정리되면 흔적을 최소화하며 사그라들어야 한다. 이 켜고 끄는 스위치를 얼마나 섬세하게 다루느냐가 감염에서 살아남는 능력과, 만성질환의 위험 사이에서 균형을 좌우한다. 결국 염증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아프고 어떻게 회복하는지를 이해하는 일과 같고, 그 균형을 지키는 선택이 곧 장기적인 건강을 설계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 된다. 이는 작은 생활 습관의 차이가 세포 단위의 염증 지표를 서서히 바꾸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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