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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비만과 대사의 생물학, 에너지 균형이 무너질 때

by songshine 2025. 11. 23.

우리 몸은 섭취한 에너지와 소비하는 에너지의 균형을 예상보다 정교하게 관리한다. 먹어서 들어오는 열량과 움직임, 체온 유지, 장기 기능에 쓰이는 열량이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뇌와 호르몬, 장기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균형점을 찾아간다. 비만은 단순히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인 결과'라기보다, 이 에너지 조절 시스템이 오랫동안 조금씩 틀어지면서 새로운 균형을 잘못된 지점에 잡아버린 상태라고 보는 편이 가깝다.
음식을 먹으면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이 소화, 흡수를 거쳐 혈액으로 들어온다. 혈당이 상승하면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고, 인슐린은 세포가 포도당을 받아들여 에너지원으로 쓰거나 글리코겐, 지방 형태로 저장하게 만든다. 반대로 공복이 길어지면 글루카곤, 아드레날린 같은 호르몬이 분비되어 저장된 에너지를 꺼내 쓰도록 유도한다. 이렇게 먹었을 때 저장하고, 배고플 때 꺼내 쓰는 과정이 잘 작동하면 체중은 어느 범위 안에서 변동될 뿐 큰 변화 없이 유지된다.
지방조직은 예전처럼 단순 저장고가 아니라, 여러 호르몬을 분비하는 내분비 기관으로 이해된다. 지방세포가 커지고 개수가 늘어나면 렙틴이라는 호르몬이 많이 분비된다. 렙틴은 시상하부에 도달해 "에너지가 충분하다", "식욕을 줄여도 된다"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런데 비만 상태에서는 렙틴 농도가 높음에도 뇌가 이 신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렙틴 저항성이 자주 나타난다. 지방은 이미 넘치는데도, 뇌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착각해 식욕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인슐린도 비슷한 문제를 겪는다. 정제 탄수화물이 많은 식사, 잦은 간식, 늦은 밤 먹는 습관이 반복되면 혈당은 자주 크게 뛰고, 이를 낮추기 위해 췌장은 많은 양의 인슐린을 분비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근육과 지방세포는 인슐린 신호에 둔감해지고,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 더 높은 농도의 인슐린이 필요해지는 인슐린 저항성이 생긴다. 이 단계에서 혈당은 쉽게 떨어지지 않고, 지방 분해가 억제되며, 남는 에너지는 다시 지방으로 저장된다. 결국 인슐린 저항성은 비만과 제2형 당뇨병이 서로를 밀어 올리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뇌 속에는 이런 정보들을 종합해 에너지 균형을 조절하는 신경 회로가 있다. 시상하부의 특정 뉴런 집단은 혈액 속 포도당, 지방산, 아미노산 농도와 렙틴, 인슐린, 그렐린 같은 호르몬 수준을 감지해 식욕과 에너지 소비를 조절한다. 진화의 입장에서 보면 인류는 부족한 열량을 견디는 능력을 우선시하며 살아남아 왔다. 그래서 체중이 갑자기 줄면, 뇌는 위험 신호로 받아들이고 식욕을 끌어올리며 기초대사량을 낮추는 방향으로 반응한다.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초반에 살이 잘 빠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속도가 크게 둔해지고, 중단하면 원래 체중보다 조금 더 늘어난 지점에서 멈추는 "요요" 현상이 바로 이 방어 시스템과 연관되어 있다.

비만에는 유전적 요인도 존재한다. 사람마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양을 먹고 비슷하게 움직여도 체중 변화가 다르게 나타난다. 드물게는 렙틴이나 그 수용체, 시상하부 신호전달 경로에 특정 유전적 결함이 있어 어린 나이부터 심한 비만이 나타나기도 한다. 대부분은 여러 유전 변이가 겹쳐 살이 잘 붙는 체질을 만들고, 여기에 현대 사회 특유의 환경, 예를 들어 고열량 음식의 쉬운 접근, 앉아서 보내는 긴 시간,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가 더해져 비만 발생 위험이 커진다. 즉, 유전은 '바탕'을 제공하고 환경은 그 바탕을 실제 체질로 굳히는 역할을 한다.
지방이 어느 부위에 쌓이느냐도 중요하다. 허벅지나 엉덩이 같은 피하지방은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다. 반면 복부 깊숙한 곳 장기를 둘러싸는 내장지방은 염증성 분자를 더 많이 분비하고, 간으로 바로 유입되는 지방산을 늘려 지방간과 인슐린 저항성을 악화시킨다. 같은 체질량지수라도 허리둘레가 굵고 내장지방이 많은 사람에서 고혈압, 심근경색, 뇌졸중, 제2형 당뇨병 같은 합병증 위험이 더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비만을 볼 때는 체중계 숫자만이 아니라, 지방의 분포와 대사적 활성을 함께 살펴야 한다.
장내 미생물은 비만과 대사를 잇는 또 하나의 축이다. 일부 미생물 조합은 섬유질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뽑아내고, 짧은사슬지방산을 통해 지방 세포와 간세포의 대사를 조절한다. 고지방·저섬유질 식단, 반복적인 항생제 사용,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는 장내 미생물 균형을 깨뜨리고, 장 점막의 방어력을 약화시켜 전신에 저강도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 이 만성 염증 상태는 인슐린 저항성과 지방 축적을 더 많이 촉진한다. 결국 비만은 우리 몸 세포와 장내 미생물이 함께 이루는 생태계가 장기간에 걸쳐 불안정해진 결과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무너진 에너지 균형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단기간에 체중을 크게 줄이는 극단적인 다이어트는 앞서 말한 뇌의 방어 회로를 강하게 자극해 요요를 부르기 쉽다. 오히려 비교적 작은 열량 부족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근육량을 보존하거나 늘리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대사 건강에는 더 유리하다. 규칙적인 수면과 식사, 섬유질과 단백질이 충분하고 가공을 최소화한 식단, 하루 중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고 걷기·근육 사용을 늘리는 습관은 인슐린과 렙틴 신호를 서서히 정상 범위로 돌려놓는 데 도움을 준다. 약물치료나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도 이런 생활 습관이 함께 갖춰져야 효과가 오래 간다.
비만과 대사의 생물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체중을 단순한 의지의 결과가 아니라 복잡한 조절 시스템의 산물로 바라보는 일이다. 체중계 숫자만을 목표로 삼기보다, 에너지 균형을 조절하는 뇌, 호르몬, 장내 미생물, 지방조직의 언어를 존중하면서 환경을 조금씩 바꾸는 쪽이 더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전략이다. 결국 "에너지 균형이 무너진다"라는 것은, 우리의 생활 방식과 몸속 생물학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는 신호이며, 이를 바로잡는 과정이 곧 장기적인 건강을 다시 설계하는 과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