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물학

노화하는 줄기세포, 재생력은 왜 나이가 들수록 줄어드는가

by songshine 2025. 11. 21.

어린아이는 넘어져 무릎이 까져도 금세 딱지가 앉고, 며칠이면 상처가 흐려진다. 반대로 나이가 들수록 비슷한 상처라도 오래 붓고, 색도 쉽게 가시지 않는다. 이 차이는 단순히 "피부가 약해졌다"라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그 배경에는 각 조직에 숨어 있는 줄기세포와, 그 줄기세포를 둘러싼 미세환경이 서서히 변해 가는 과정이 놓여 있다. 몸의 재생력은 결국 줄기세포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고, 노화는 이 재생 시스템이 피로를 축적해 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줄기세포는 자가복제와 분화라는 두 가지 능력을 동시에 지닌 특수한 세포다. 장 상피, 피부, 혈액처럼 교체가 빠른 조직에서는 줄기세포가 끊임없이 새로운 세포를 공급해 주고, 간처럼 손상 후 재생이 중요한 장기에서는 필요한 순간에 분열을 늘려 조직을 복구한다. 이때 줄기세포가 무한히 분열하기만 한다면 노화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줄기세포 역시 시간이 지나며 손상을 입고, 숫자와 품질이 모두 서서히 떨어진다.
가장 기본적인 변화는 줄기세포 풀(pool) 자체의 감소다. 줄기세포는 분열할 때 보통 '대칭적' 혹은 '비대칭적' 분열 중 하나를 택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DNA 손상이나 대사 스트레스 때문에 줄기세포가 점점 대칭 분열, 즉 둘 다 분화 쪽으로 기울어진 딸세포를 만드는 패턴을 더 자주 선택하게 된다. 겉에서 보기에는 당장은 재생이 잘 일어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줄기세포 저수지가 서서히 비어 가는 셈이다. 조혈모세포 수가 줄어들면서 혈액세포의 다양성이 떨어지고, 장 줄기세포가 감소하면서 상피가 얇아지고 회복 속도가 느려지는 현상이 이런 방식으로 설명된다.

줄기세포를 둘러싼 미세환경, 즉 니치도 노화의 중요한 축이다. 니치는 줄기세포에게 필요한 신호와 영양, 기계적 지지를 제공하는 일종의 '줄기세포 서식지'다. 젊은 개체의 니치는 성장 인자와 억제 신호가 섬세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 줄기세포가 과도하게 분열하지도, 완전히 잠들지도 않게 조절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이 균형이 무너진다. 혈관과 지지세포에서 분비되는 신호가 바뀌고, 만성 염증이 미세하게 쌓이며, 세포외기질의 강도와 구성이 변한다. 실제로 늙은 동물의 줄기세포를 젊은 니치로 옮기면 기능이 상당 부분 회복되고, 반대로 젊은 줄기세포를 늙은 니치에 두면 재생 능력이 빠르게 떨어진다는 실험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줄기세포 내부에서도 시간의 흔적이 깊게 남는다. 분열을 거듭하는 동안 DNA에는 크고 작은 손상이 축적되고, 텔로미어는 조금씩 짧아진다. 젊을 때는 DNA 복구 시스템이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만, 반복되는 스트레스 앞에서 복구 효율은 점차 떨어진다. 손상이 너무 심해지면 p53 같은 감시자가 작동해 세포주기를 멈추거나 세포사멸을 유도하는데, 줄기세포가 이런 '방어적 멈춤' 상태에 들어가면 숫자는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외형상으로는 줄기세포 수가 크게 줄지 않았더라도,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실전 병력은 감소하는 셈이다.
후성유전적 변화 역시 줄기세포 노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DNA 메틸화 패턴과 히스톤 변형 조합이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흩어지는 현상을 흔히 후성유전적 드리프트라고 부른다. 이는 세포가 어떤 유전자를 켜고 끌지 결정하는 규칙이 서서히 흐려지는 것으로, 줄기세포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들은 충분히 발현되지 않고, 오히려 분화나 염증, 스트레스 반응과 연관된 유전자들이 필요 이상으로 활성화되기도 한다. 그 결과 줄기세포는 이전처럼 정교하게 자가복제와 분화를 조율하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선택을 하게 된다. 골수에서 특정 돌연변이를 지닌 조혈줄기세포가 나이가 들수록 비정상적으로 우세해지는 '클론성 조혈' 현상도, 이러한 후성유전, 유전적 변화가 함께 작용한 결과로 이해된다.
대사 관점에서 보면, 줄기세포는 원래 비교적 낮은 대사 상태를 유지하며 조용히 버티는 전략을 택한다. 활성산소가 많이 생기는 상태를 피함으로써 DNA와 단백질 손상을 줄이려는 것이다. 그러나 노화와 함께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떨어지고, 에너지 대사 경로가 바뀌면서 활성산소 생성이 증가한다. 산화 스트레스는 다시 DNA 손상과 후성유전 변화를 촉진하고, 염증 신호를 강화해 악순환을 만든다. 결국 줄기세포는 조용히 오래 버티는 모드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분열을 멈추거나 기능을 잃는 방향으로 몰린다.
이 모든 요소가 합쳐지면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여러 노화 현상으로 드러난다. 상처가 예전만큼 빨리 낫지 않고, 뼈가 부러졌을 때 유합 속도가 느려지며, 혈액세포의 구성과 면역 반응 패턴이 변하고, 장벽 기능이 약해져 감염에 더 취약해지는 것들이다. 노화가 단지 "세포가 오래되어 낡았다"라는 막연한 표현이 아니라, 줄기세포와 니치, DNA 안정성, 후성유전, 대사가 함께 변해 가는 복합적인 과정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물론 이런 변화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줄이거나 늦출 수 있는 여지는 있다. 만성 염증을 높이는 생활 습관을 줄이고, 대사 스트레스 지수를 낮추며, 줄기세포 니치에 과도한 손상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생활을 조정하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동시에, 연구자들은 후성유전 조절을 되돌리는 약물, 줄기세포 니치를 젊게 유지하려는 전략, 건강한 줄기세포를 체외에서 확장해 이식하는 방법 등을 탐구 중이다. 아직은 기초 연구 단계인 내용이 많지만, 줄기세포 노화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앞으로의 재생의학과 건강수명 연장의 핵심 토대가 될 것이다.
결국 재생력의 감소는 노화의 여러 얼굴 중 하나가 아니라, 노화를 정의하는 핵심 특성 가운데 하나다. 줄기세포와 그 주변 환경이 얼마나 오랫동안 젊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가, 상처에서 얼마나 빨리 회복할 수 있는지를 넘어, 장기들의 기능과 전반적인 건강 궤적까지 결정한다. 몸이 스스로를 고쳐 쓸 수 있는 힘이 서서히 줄어드는 과정이 곧 노화라면, 줄기세포를 이해하는 일은 결국 "얼마나 오래, 얼마나 건강하게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연결된다.